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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을 것인가 | 마지막 순간까지 온전히 살아가기

by 비비자 2025. 1. 26.

책 '어떻게 죽을 것인가' 리커버 표지

 

 

 

죽음을 외면하는 현대인들

현대 의학은 수명을 어느 정도 연장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노화와 죽음이라는 필연적인 과정에 맞서느라 종종 인간다운 삶을 희생시키는 역설을 보여 준다. 병원과 요양원은 물리적 수명 연장에 초점을 맞추기에 환자의 정신적 행복에는 소홀해지곤 하는 것이다. "병들고 나이 든 사람들을 대할 때의 가장 잔인한 실패는, 그들이 단지 안전하게 오래 사는 것 이상으로도 다른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라는 저자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어떻게 죽음이라는 현실을 직시하고, 어떻게 하면 마지막까지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저자, 아툴 가완디는 외과 의사이자 작가로서, 본인의 환자 경험과 아버지의 임종을 통해 현실의 모순을 깊이 통찰했다고 한다. 그는 치료에만 국한된 의료 시스템이 이제는 환자의 삶의 질과 죽음의 품위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병실에서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가치와 목표에 따라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진정한 의료의 역할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존엄한 삶의 마지막을 위하여

인간은 죽음이라는 현실 앞에서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호흡을 연장하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치료에 매달리거나, 혹은 마지막 나날들을 인간답게 보내기를 선택하거나.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현실을 최대한 회피하려 하기에, 의료진들은 환자에게 희망을 주려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지 않고, 가족들은 사랑하는 이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대신 끝까지 치료를 고집한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병실에서 무력하게 생의 마지막을 보내게 된다. 그런 가운데 의미 있는 마지막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을 돕는 새로운 의료 시스템의 시도들이 의미 깊게 다가온다.

호스피스나 완화치료 같은 개념은, 기계적 생명 연장보다 환자의 삶의 질 향상에 초점을 맞춘다. 통증과 증상을 완화하는 걸 넘어 신체적, 심리사회적, 영적 영역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와 치료를 포함하는 것이다. 환자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까지도 돌봄의 대상으로 본다. 최근에는 자문형 호스피스라는 새로운 형태도 등장했다. 환자가 기존 주치의의 진료를 받으면서도 호스피스 팀의 돌봄을 함께 받을 수 있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호스피스는 죽으러 가는 곳이라는 암묵적 편견을 깨고, 더 많은 환자들이 존엄한 삶의 마무리를 준비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어려운 대화를 나누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다. 환자와 가족이 죽음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물론 쉽지는 않지만, 환자의 남은 삶을 설계하기 위해선 필수적인 과정이다. 수잔 블록 박사는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이런 상태가 된다면 더 이상 치료받고 싶지 않다, 하는 기준이 있으신가요?", "남은 시간이 짧다면,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싶으신가요?" 같은 질문을 통해 환자의 진정한 바람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어떤 환자는 손주의 졸업식에 참석하고 싶다는 바람을 품을 수도 있고, 어떤 환자는 그저 고통 없이 평화로운 마지막만을 원할 수도 있다. 대화를 통해 의료진은 환자의 목표에 맞는 맞춤형 치료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새로운 시도들

의료계의 고정관념을 깨고 인간다운 삶을 위한 혁신적인 시도들이 주목받고 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린하우스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요양원의 비인간적이고 소외된 환경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고 한다. 새하얀 병실의 분위기를 벗어나, 집처럼 느껴지도록 재설계했고, 소규모 공동체를 만들어 입주자들이 스스로 일정을 정하고 활동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동물과 식물들도 요양 시설에 들여놓았다고 한다. 일차원적인 환경 개선이 아니라 입주자들에게 삶의 의미와 목적을 제공하는 감성적 접근이었다. 식물을 돌보는 책임을 맡은 노인들은 더 활기차고 적극적으로 변했다고 한다. 동물들과의 교감 역시 정서적 안정에 큰 도움이 된다.
생활 지원 시설도 주목할 만한 대안이다. 요양원과 자가 생활의 중간 단계로, 작은 주택 형태로 설계되며, 입주자들에게 개인 방과 욕실을 제공한다. 공용 공간에서 다른 주민들과 교류할 수도 있다. 노인들은 자율성과 프라이버시를 유지하면서도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자신만의 공간에서 생활하며 일상적인 결정들을 스스로 내릴 수 있게 한 것이다. 설립자는 어머니가 뇌졸중 이후 요양 시설에서 겪은 비인간적인 대우를 보고 이런 시스템의 시설을 구상하게 됐다고 한다.
레너드 플로렌스 센터는 또 다른 혁신 사례다. 최초의 도시형 그린하우스 모델 기반 요양 시설로, 중증 질환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다. 이곳 역시 입주자들에게 단독 방을 제공하고 그들의 일정과 활동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한다. 한 입주자는 이곳에서 "세상에 여전히 자신의 자리가 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이는 치료 이외에도 삶의 질과 존엄성을 중시하는 접근 또한 얼마나 소중한지 보여 준다.
이러한 사례들은 아무리 노인이어도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는 감각, 스스로를 통제한다는 감각이 중요하다는 진리를 곱씹게 한다. 의료 시스템이 안전과 효율성만을 강조하던 기존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환자의 자율성과 삶의 질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설들은 아직 소수에 불과하다고 한다. 더 많은 의료 기관들이 이러한 변화를 이해하고 확산시켜야 하지 않을까.

 

우리에게 남겨진 질문들

좋은 죽음이란 무엇일까? 이 책은 독자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저자는 '좋은 죽음'이라는 표현 자체를 거부한다. 대신 '끝까지 좋은 삶'을 이야기한다. 결국 핵심은 개인이 자신의 가치와 우선순위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죽음을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고통 없이 평화롭게 떠나는 것을, 또 어떤 이는 끝까지 투병하며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수잔 블록 박사의 아버지는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먹고 미식축구를 볼 수 있다면 더 살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아이스크림조차 먹을 수 없는 상태라면 삶을 지속하는 데 의미를 느끼지 못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말이다. 단순히 목숨을 연장하기 위해 고통스러운 치료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요소들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겠다는 뜻이다.

현재 의료 시스템의 큰 문제 중 하나는 생명 연장 외의 가치를 간과한다는 점이다. 이는 불필요한 고통을 초래하고 존엄한 죽음의 기회를 빼앗기도 한다. 저자는 의료 시스템이 이제는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죽음은 인간이 이길 수 없는 숙명이므로, 죽음을 직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간의 삶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다. 각자에게 주어진 질문들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답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