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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utlaw Ocean | 우리가 외면한 디스토피아

by 비비자 2025. 1. 20.

 

책 'The Outlaw Ocean'의 표지

 

법도 신도 존재하지 않는 바다

 
서양의 오래된 항해 격언 중 '남위 40도 밑으로는 법이 없고, 남위 50도 밑으로는 신도 없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물론 그 부근에 칠레나 아르헨티나 등이 있기는 하지만, 바다가 얼마나 가혹한지를 강조하는 표현일 것이다. 오늘날 바다는 그저 자연의 두려움을 보여 주는 공간이 아니다. 현대판 노예제도가 자행되고, 살인이 은폐되며, 환경이 무차별적으로 파괴되는 디스토피아적 공간이다. 이안 얼비나의 The Outlaw Ocean은 이 디스토피아의 실체를 파헤친다. 불법 어선 추격전, 목에 족쇄를 차고 일하는 노예 선원들, 바다 한가운데서 총살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경악스럽다. 선원들은 폭력과 굶주림에 시달린다. 이 책은 묻는다. 왜 21세기에도 이런 일이 가능한가? 누가 이런 범죄를 저지르며, 누가 이를 방관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책임이 있는가?
 
 

바다 위의 무법자들

 
뉴욕타임스 기자인 저자는 5년간의 취재를 통해 바다에서 벌어지는 범죄와 비극을 직접 목격하고 기록했다. 좋은 일자리를 약속받고 배에 올랐지만, 곧 여권을 빼앗기고 목에다 족쇄를 찬 채 1일 20시간씩 일해야 했던 사람의 이야기도 있다. 반항하는 사람은 참수되거나 며칠 동안 어두운 창고에 갇혔다고 한다. 저자는 이런 비극이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전 세계 어선에서 수많은 선원들이 여전히 이런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있다는 거다. 바다 위에서는 살인도 빈번하게 벌어진다. 저자가 입수한 동영상 중에는 이런 영상도 있었다고 한다. 어선들이 침몰 중인 배를 둘러싸고 물속에 있는 사람들을 총으로 쏘아 죽이는 장면이 있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국제 해역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제대로 수사조차 되지 않았다. 법적 관할권이 모호하고 증거 수집이 어렵다는 이유다. 저자는 이런 잔혹한 현실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마음이 무너지는 장면들이지만, 이런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법이 없는 곳에서 정의는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가? 바다는 여전히 무법지대이고, 바다 위에서 벌어지는 범죄들은 국제법의 공백 속에서 처벌받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의는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까. 이러한 사건들은 법적 문제를 넘어, 인류가 직면한 윤리적 과제를 마주하게 만든다.

해양 범죄의 규모는 상상이상으로 크다. 불법어업과 인신매매, 마약 밀수 등과 엮여 있는 산업형 어업의 규모가 매년 2770억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G20 국가들이 수입한 상품 중 600조 원 상당이 현대판 노예들을 착취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정부와 기업, 소비자들이 무의식적으로 외면하는 글로벌 사각지대에서 벌어지는 일들다. 특히 불법어업 선박들은 복잡하고 불투명한 공급망을 통해 불법 어획물을 시장에 유통시킨다. 세계 최대 원양 선단을 보유한 중국의 경우, 불법어업과 인권침해를 저지르면서도 정부로부터 연간 800만 달러의 원양어업 보조금을 받고 있다고 한다.
 
Thunder호와 같은 불법 어선들은 금지된 길넷을 사용해 멸종 위기종을 무차별적으로 포획하기도 한다. 해양 생태계를 심각하게 파괴하는 행위다. 그리고 버려진 그물은 유령 그물이 되어 바다를 떠돌며 생명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선박들은 불법 장치를 사용해 폐기름과 화학 물질을 바다에 배출한다.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근시안적 행위다. 그 탓에 산호초가 파괴되고 물고기들이 독살당한다. 그리고 그 독성물질은 먹이사슬을 타고 사람들의 식탁까지 오르게 된다. 저자는 인류의 바다 착취 능력이 법이나 과학적 보호 능력을 크게 앞질렀다고 강조한다.
 
이런 현실에 맞서 Sea Shepherd와 같은 단체들은 불법 어업 선박을 추적하고 단속하려 노력한다. 이들의 활동은 종종 법적 경계를 넘나들며 논란이 되기도 한다. 주로 대규모 불법 선박을 상대하긴 하지만, 생계형 불법어선을 공격한 사례도 있었기 때문이다. "해적을 잡기 위해 해적이 되는 것"이라는 그들의 모토처럼, 때로는 폭력적인 방식으로 불법 어업을 막으려 한다는 것이다. 이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라는 윤리적 고찰을 동반하기도 한다. 일부 비평가들은 그들의 활동이 환경 보호보다는 홍보와 기금 모금을 위한 퍼포먼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직접 선박에 탑승해 추격전을 기록하며, 이들이 실제로 불법 어업 단속에 실질적인 성과를 냈고, 이러한 비판이 과장되었음을 주장한다. 법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는 바다에서 정의를 실현하려는 사례라는 것이다.
 
 

저렴한 참치캔이라는 환상

 
저자는 충격적인 사건들을 제3자로서 관람하게 하지 않고, "우리도 공범이 아닐까?"라는 다소 묵직한 질문도 던진다. 소비하는 해산물 중 상당수가 강제 노동과 환경 파괴로 얻어진다는 점 때문이다. '5온스짜리 참치캔을 2.5달러에 판매하면서도 지속가능하고 합법적이며, 계약직 근로자들에게 생활임금을 지급할 수 있다는' 환상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요즘에는 참치캔 소비가 줄었다는 기사들이 나오는 실정이지만, 어쨌거나 핵심은 '낮은 가격과 효율성 뒤에는 숨겨진 비용이 있다'는 것이다.
"바다는 숨막히게 아름답지만, 동시에 디스토피아적 공간"이라는 표현처럼, 저자의 글은 바다의 양면성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치는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데 있다. 책에 담긴 사실들이 어둡고 무거워서 읽기 힘들었다는 의견들도 있다. 하지만 고민 없이 소비하던 해산물이 어떤 비극과 연결되어 있는지, 글로벌 경제의 이면에 숨겨진 잔혹한 진실은 무엇인지 묻는 것은 불편하지만 꼭 필요한 질문이다. 저자의 기록들은 단순한 고발이나 폭로를 넘어선다. 바다라는 공간이 어떻게 인류의 탐욕과 무관심 속에서 무법지대가 되었는지, 그리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범죄가 어떻게 우리의 일상과 연결되는지를 일깨운다. 독자들에게 해양 문제가 단순히 환경이나 처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책임져야 할 윤리적 과제임을 일깨운다는 점에서 읽어 볼 만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