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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뇌는 어떻게 배우는가 요약 | 인간의 뇌가 AI보다 잘 배울까?

비비자 2025. 2. 6. 23:19

책 '우리의 뇌는 어떻게 배우는가' 표지

 

 

 

뇌과학으로 밝히는 학습의 비밀

인지신경과학자 스타니슬라스 드앤의 <우리의 뇌는 어떻게 배우는가>는 인간의 학습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책이다. 저자는 뇌가 어떻게 세상을 이해하고 정보를 처리하는지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학습을 '외부 세계의 내부 모델을 형성하는 과정'으로 정의한다. 외부 세계의 구체적 경험을 내부에서 추상적 개념으로 변환하고 기존 지식과 연결하면서 더 깊은 이해를 만들어가는 순환적 과정이라는 거다. 인간의 학습을 기계의 학습과 비교해서 설명하기도 한다. 특히 인간의 뇌가 지닌 독특한 특성들 - 추상적 개념을 형성하는 능력, 적은 데이터로도 효율적으로 학습하는 능력,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 등을 설명한다. 기계에게 모방시키기 어려운 인간 고유의 능력이라는 것이다.

근데 원제목의 부제가 흥미롭다. (How We Learn: Why Brains Learn Better Than Any Machine… for Now) '뇌가 기계보다 잘 배우는 이유... 지금까지는' 이 책은 2020년에 발행됐다. 그 사이 AI의 발전 속도가 얼마나 눈부셨는가. 책에서는 2016년 알파고의 사례를 들어 설명하지만 2025년 2월 현재는 딥시크 vs. 챗지피티로 시끄럽다. 그런데 사실 알파고의 충격적 등장으로 막연히 AI의 압도감을 상상하던 그 시절에 비하면, 상용화된 AI 모델을 직접 이용하면서 대중의 인식은 오히려 차분해졌다. 기존 데이터를 재조합해서 인간이 설계한 대로 출력한다는 본질을 이해하게 된 탓이다. 대신 빠릿빠릿하고 실용적인 '도구'의 포지션으로서 확실히 자리잡았다. 어쩌면 그 당시에 인간의 뇌가 더 영리하다는 설명을 읽은 것보다, 챗지피티의 단순함을 체감한 뒤에 같은 구절을 읽는 게 더 와닿을 수도 있겠다.

 

 

인공지능보다 효율적인 '학습 기계'

AI와 인간의 핵심적 차이는 작동 방식에 있다. 인간은 가설을 세우고, 능동적으로 개입해 검증하며, 결과에 따라 가설을 수정하는 순환적 사고가 가능하다. 현대 인공지능 기술로는 아직 구현이 미흡한 부분이다. AI는 기본적으로 데이터의 통계적 패턴을 찾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래서 “병원 침대를 줄이면 사망률이 낮아진다”와 같은 잘못된 추론을 내놓기도 했었다. 2025년 현 시점에선 이런 단순한 수준의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혼동하는 오류는 줄었지만, 여러 요인이 얽힌 복잡한 상황에서는 여전히 한계를 보인다. 능동적 개입과 가설 수정이 어렵다 보니, 숨겨진 교란 변수나 다층적 맥락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은 세상을 기호로 변환하는 능력을 가졌다고 한다. 다른 말로 추상화라고 한다. 이는 놀라운 데이터 효율성을 불러온다. 저자는 인간의 아기와 AI를 비교한다. AI가 수만 장의 사진을 보고나서야 겨우 고양이를 구분할 수 있는 것과 달리, 아기는 단 몇 번의 경험만으로도 새로운 패턴을 인식하고 일반화할 수 있다. 얼굴이나 얼굴과 비슷한 형태에 주의를 집중하려 하는 편향도 있다. AI 모델에도 특정 시각적 패턴에 대한 편향을 활용할 수 있다면 학습 속도를 높이고 효율성을 개선할 수 있지만 아직은 구현하기 어렵다고 한다.

인간은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추상적이고 창의적인 개념을 설계하며, 환경과 상호작용해 새로운 개념을 창조하거나 기존 개념을 발전시키는 유연성을 갖고 있다. 건축가처럼 공간의 용도, 미적 가치, 구조적 안정성을 고려해 설계를 조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반면 AI는 대량의 데이터를 분석해 특정 패턴을 학습하고 반복 작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데 특화되어 있다. 데이터 기반의 패턴 매칭에 의존하는 탓에 새로운 맥락이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 창의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인간처럼 본질을 포착하거나 유연하게 설계 변경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거다.

책에서 강조하는 또 다른 차이는 에너지 효율성이다. 인간의 뇌는 시간당 20Wh를 소모한다고들 한다. 전구 하나를 밝히는 에너지와 같다. 하지만 핵심은 이게 아니다. 20Wh는 기본적인 생존 기능을 포함해 뇌가 사용하는 에너지의 총량이다. 즉 1시간 동안 살아 있기 위해 뇌가 힘쓰는 비용이다. 그리고 아무리 복잡한 사고 과정을 소화해도 추가적인 에너지 소모는 5~8%밖에 발생하지 않는다. 반면 AI 시스템은 오직 생각을 위해 많은 양의 에너지를 소비한다. 데이터 센터 유지, 훈련에 사용되는 부차적인 비용도 있다. 챗지피티가 질문 하나당 소비하는 전력은 3Wh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리고 챗지피티가 주로 처리하는 요청들은 간단한 대화나 일상적인 정보들이다. 인간의 경우 10분 동안 살아 있기 위해 뇌에서 3.33Wh를 소비하는데, 10분 동안 복잡한 고뇌를 한다면 추가적으로 0.2Wh를 더 소비하게 된다. 간단한 대화의 답변을 떠올리기만 했다면? 추가적으로 발생되는 비용은 0에 가까운 것이다.

물론 AI도 발전하고 있다. 최근의 AI는 강화학습과 메타학습으로 추상 개념 생성과 제한적 인과 모델링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자원 효율성과 자기 주도적 탐색 능력 면에선 한계가 뚜렷하다. 인간은 호기심으로 동기를 생성해 적은 데이터로 가설을 수정하며, 사회적 맥락을 에너지 효율적으로 처리한다. 2025년 현재 AI의 발전은 특정 영역에서 초월적 성능을 보이지만, 통합적 학습 기제에선 생물학적 뇌를 넘어서지 못했다는 게 현 시점의 평가다.

 

 

아기는 태어날 때부터 과학자다

인간의 뇌는 태어날 때부터 얼마간의 지식을 갖추고 있다. 과거의 학자들은 아기들이 빈 도화지, 무의 상태일 것이라 짐작했다. 하지만 인간은 백지 상태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적인 틀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렇게 진화했다.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태어났으면 좋았을 수도 있지만, 필요할지 안 필요할지 확실하지 않은 방대한 정보들을 미리 가지고 태어나는 건 비효율적이기에, 대신 학습의 기반이 되는 아주 기본적인 지식들을 유전자에 새긴 것이다.

예를 들어 갓 태어난 아기도 세상이 고체로 이루어져 있다는 개념을 이해하는 기본적인 인지 구조를 가지고 있다. 물체들이 서로 통과할 수 없고, 갑자기 사라지거나 하지 않는다는 걸 안다는 거다. 중력의 개념도 이해하고 있다. 생후 5개월 된 아기에게 공중에 떠 있는 공을 보여주면 오랫동안 쳐다본다. 공이 허공에 떠 있는 건 자연스럽지 않은 일임을 안다는 거다. 숫자 감각도 탑재돼 있다. 가령 두 개의 인형이 있어야 할 상황에서 한 개만 있으면 아기가 더 오래 응시하는데, 이는 기대를 배반하자 놀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얼굴 인식 능력도 일찍 나타난다. 생후 2일 된 신생아도 얼굴이나 얼굴을 연상시키는 형태를 단순한 원반 모양보다 더 오랫동안 바라본다. 임신 6주차부터 엄마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음소 구분 능력도 타고난다. 초기에는 모든 언어의 소리를 구별할 수 있지만, 생후 첫해 동안 모국어 환경에 따라 이 능력이 재구성된다.

아기들은 이런 기반들 위에서 효율적이고 빠르게 배운다. 가설을 세우고, 실험하고, 결과를 관찰하며 새로운 지식을 쌓는다. 저자는 이런 점에서 아기를 '작은 과학자'라고 본다. 과학자가 실험실에서 하는 일을 아기는 매일매일의 삶 속에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자발적이고 효율적인 학습 능력은 아직 AI에게 구현되지 않은 영역이다.

 

 

배움의 기둥: 집중, 참여, 피드백, 통합

학습의 과정은 알고리즘처럼 작동한다. 인간은 배울 때 네 가지 핵심 요소를 필요로 한다. 저자는 이를 '배움의 네 기둥'이라 명명했다.

첫째는 주의집중이다. 뇌는 한 번에 하나의 일에만 집중할 수 있다. 주의력이 제한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의 주의력 네트워크는 세 가지로 나뉘는데, 경계(뇌의 각성), 정향(뇌의 필터), 집행 제어(뇌의 스위치보드)가 그것이다. 청반에서 분비되는 노르에피네프린이라는 게 경계 상태를 조성하고, 아세틸콜린이 정보 선택을, 도파민은 집행 제어를 담당한다. 이런 복잡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때, 즉 집중할 때에, 비로소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

둘째는 적극적 참여다. 수동적 유기체는 배우지 못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호기심은 학습의 핵심 동력이다. 호기심이 도파민 회로를 자극해 만족감을 준다. 그리고 아는 것과 알고 싶은 것 사이의 간극을 인식할 때 호기심이 생기고, 이것이 능동적 학습을 이끈다. 아기 때도 그랬듯이, 인간의 뇌는 마치 과학자처럼 가설을 세우고 이를 검증하면서 세상에 대한 이해를 넓혀간다.

셋째는 에러 피드백이다. 오류 없이는 학습도 없다. 인간은 맞다고 알고 있던 것이 틀렸다는 걸 알면 놀라게 된다. 그런 놀람은 학습의 근본적인 동력 중 하나다. 기대를 위반하는 사건이 발생할 때 학습이 더욱 잘 이루어진다. 따라서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겠다. 단순한 점수 매기기나 성적 시스템보다는 오류의 원인과 수정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피드백이 중요하다.

넷째는 통합이다. 학습한 내용을 장기 기억으로 전환시키고 자동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때 반복 학습과 충분한 수면이 필수적이다. 잠이 들면 뇌는 낮 동안의 경험을 재생하고 기억을 강화한다. 렘 수면은 지각적, 운동적인 학습을 처리하고, 깊은 수면은 추상적 정보를 고정시키는 데 중요하다고 한다.

네 기둥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집중하지 않으면 학습에 참여하는 게 불가능하고, 피드백 없이는 오류를 수정해 나갈 수 없으며, 통합 과정 없이는 학습한 기억이 지속되지 않는다. 마치 네 개의 기둥으로 지탱되는 건물과 같다. 효과적으로 배우기 위해선 이 네 가지 요소가 모두 상호작용해야 한다.

 

 

교육자가 숙지해야 할 뇌과학

교육은 결국 부모의 몫이다. 인간은 모두 놀라운 잠재력을 타고나지만, 그것을 어떻게 발현시키고 키워나갈지는 부모의 손에 달렸다. 저자는 아이의 호기심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호기심은 도파민 회로를 자극해 게임이나 초콜릿을 먹을 때와 같은 유의 만족감을 준다. 아이가 끊임없이 '왜?'라고 묻는 것은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또한 아이가 실수에 위축되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오류는 학습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며, 실수를 통해 배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학습 방법임을 알아야 한다. 충분한 수면을 유도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스트레스 없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아이의 학습 속도를 존중해야 한다. 모든 인간은 자신만의 속도로 배운다는 거다.

특히 아이들의 언어 교육 측면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 언어를 가장 잘 배우는 시기는 생후 5세까지라고 한다. 언어를 폭발적으로 습득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부모가 두 가지 언어를 사용할 경우 쉽게 바이링구얼이 되지만, 어릴 때 외국어에 노출되지 않은 경우 외국어를 네이티브처럼 사용하기가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다. 또한 뭔가를 가르칠 때엔 아이와 눈을 마주치며 뭔가를 가르쳐 줄 것이라는 신호를 주고,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해야 한다. 외국어 영상을 틀어 주는 것으로는 학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학습이나 교육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 볼 만한 책이다. 이 책이 내가 태어나기 전에 출간됐고, 우리 집 서재에 있었다면, 하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책이 전하는 통찰은 교육자들에게 주요한 깨달음을 준다. 학습이 언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지, 학습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배운다는 건 뇌가 세상을 이해하고 모델링하는 복잡한 과정이다. 이것을 이해했다면 교육도 뇌의 특성을 고려해 설계해야 할 것이다. 주입식 교육 같은 일방적인 지식 전달은 뇌의 학습 메커니즘에 부합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