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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2.0 시대 | 새 시대에 대한 경고

비비자 2025. 2. 2. 00:48
책 '트럼프 2.0 시대' 표지

 
 
 

트럼프 2.0 시대는 어떤 시대길래

하도 인기가 많은 책이어서 트럼프 취임식이 지나고서야 빌릴 수 있었다. 작년 8월부터 쓰기 시작해서 10월에 출간된 책이라고 한다. 2개월이면 집필 및 준비 기간이 몹시 짧은 편이다. 쉬운 말로 쓰여져 술술 읽힌다. 답답함에 가슴을 두드리며 하고 싶은 말을 일필휘지로 쏟아낸 듯한 책이다. 초반부 트럼프라는 인물의 캐릭터성에 다루는 부분은 흥미로워서 페이지가 넘어간다. 트럼프가 가져올 세계 질서의 격변, 중국이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을 예측하는 부분은 긴장감이 있어 더 빠르게 읽힌다. 소위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의 휘청임, 그리고 아마 더 심각해질 한국을 걱정을 하는 파트에서는 좀 어지러워진다. 다 읽고 나니 남의 나라 대통령이 잘하느냐 못하느냐가 문제가 아니지 싶다.
 
 

트럼프가 그리는 새로운 세계 질서

지난 2016년에도 트럼프가 당선되자 꽤나 시끄러웠지만, 당선되고 나서 (한국에 전해지는 바로는) 별일 없는 것 같기에 그저 쇼맨십 강한 정치인 정도로 이해했던 기억이 난다. 책을 읽어 보니 안일한 해석이었던 듯하다. 첫 임기 때는 공화당 내에서도 반대하는 세력들이 많았던 반면, 지금은 그의 극단적 발상들이 이제는 공화당 내에서도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멕시코 마약을 미국이 폭격하자는 제안 같은 것들은 트럼프식 농담일 줄로 알았는데, 백악관 회의에서 진지하게 여러 차례 언급했다고 한다. 하여간 바이든이 교묘하게 국익을 도모했다면 트럼프는 같은 목표라도 막무가내로 요구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나름의 논리가 있다. 가령 유럽 국가들이 나토 방위비 분담금 합의(GDP 2%)도 지키지 않으면서 러시아와 경제 협력을 하기도 하는 둥의 무임승차를 한다는 논리다. 미국에 국방비 부담을 떠안게 하고, 유럽 국가들은 절약한 돈으로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며 더 안정적인 삶을 누린다며 화를 낸다는 것이다. 특히 인상적인 건, 무역흑자를 내는 나라들이 트럼프에게 '미국을 상대로 이득을 보는' 나라로 찍혀서 각개격파당할 위기에 처할 것이라 전망하는 부분이다. 심지어 한국은 최근 한국 기업들이 미국 일자리를 늘려 주는 설비 투자를 너무 많이 하고 있는 바람에 무역 수지 흑자가 더 늘어난 것인데 트럼프가 이를 고려하지 않고 우리나라를 타겟으로 삼을 것 같다고 우려하는 부분은 블랙코미디 같은 구절이다.
다만 이 책을 읽고 트럼프를 얻어낸 미국에게 감명을 받는 독자를 보면 어리둥절해진다. 책 전반에 걸쳐 트럼프의 정책이 미국 경제를 타격할 거라는 구절이 여러 번 등장하지 않았던가?
 
 

대만에 드리운 중국의 그림자

트럼프의 정책이 미국뿐 아니라 세계 질서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다. 특히 중국과의 관계에서 그 여파는 더욱 두드러진다. 역사는 마치 거울처럼 현재를 비춘다. 저자는 중국의 미래가 1차 세계대전 직전의 독일이나 2차 세계대전 직전의 일본과 닮아갈 수 있다고 예측한다. 패권국의 자리를 넘보던 나라가 느끼는 조급함은 독일과 같고, (트럼프의 공약인) 중국 수입 중단 4개년을 정통으로 맞으면 진주만을 공습하던 일본이 될 수도 있다는 진단이다. 경제적 압박(미중 무역전쟁)이 심화될수록 군사적 모험주의로 치달을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일단 지금은 전투함을 열심히 만들고 있다고 한다. 경제 둔화가 걸림돌이 되어 목표만큼 군사력을 증강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도 있고, 대만을 위협해서 전쟁 없이도 하나의 중국으로 만들어 버릴 가능성을 점치는 시각도 있다. 책에서 이 내용을 왜 다루느냐. 만에 하나라도 중국이 대만의 TSMC를 갖게 되면 앞으로 반도체 제조는 중국이 다 가져갈 것이고 그 타격은 한국이 맞을 것이라는 것이다.
 
 

짧았던 풍요의 시대

지난 30년간 소위 강대국들이 누려온 풍요로운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저자는 날카롭게 지적한다. 유럽은 한때 미국과 지표가 비슷했었지만 지금은 급속도로 가난해지고 있다고 한다. 주요 원인은 고령화다. 연구 개발 예산이 미국에 훨씬 못 미친다는 문제도 있다. 그나마 있는 청년 인재도 미국에 빼앗긴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독일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큰 타격을 받았다는 평이다. 러시아에게서 싸게 공급받던 에너지를 수입할 수 없게 되어 타격을 받은 것이다. 중국의 상황도 시진핑 취임 이후로 악화되고 있다. 부동산 문제로 내수 시장이 쪼그라들었으나 그럼에도 고용을 유지하겠다며 수요도 없는 물건을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 보조금으로 연명하며 넘쳐나는 재고를 헐값에 수출한다. 자국 경제도 엉망인 김에 아예 마음껏 과잉생산을 해서, 환경도 박살내고 경쟁 기업들에게 심한 타격을 입히자는 '가난 수출' 작전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인플레이션을 유도하려다 경제가 더 어려워졌다는 평이다. 실질 임금이 일본 역사상 최장기 하락을 갱신했다고 한다. 와중에 일본 상황을 잘못 읽어서 경제 회복 신호로 보도하는 언론도 수두룩하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다음 장에서 이러한 문제점들을 더 치명적으로 품고 있는 나라를 소개한다.
 
 

한국이 선택할 미래

저자는 열변을 토하기 시작한다. 이대로는 수년 내 전력 대란이 올 것이고, 그나마 여력은 부동산에 묶여 생산성이 올라가거나 혁신 기업이 등장하기 어려워질 것이며, 훗날 청년 세대 한 명이 기성 세대 두 명의 빚을 갚게 될 것이라며 변화를 촉구한다. 특히 저자는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리려는 노력의 무용함에 대해 강하게 우려한다. 이제는 진짜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할 때라는 것이다. 가령, AI 산업 육성을 제안하기도 한다. 현재 정부가 편성하고 있는 수준의 R&D 예산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답답해한다. AI 산업에 있어 최대한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업들이 각자도생하며 연구개발이 파편화되는 것을 막으려면, 공유 가능한 AI 기반 기술을 선정해 공동으로 개발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AI 생태계 전반을 키우고 초연결 연구 환경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장의 제목은 분명 '끝나지 않은 한강의 기적'인데, 막상 읽어 보면 '끝나지 않으려면 한강의 기적이 필요할 텐테...'로 읽힌다. 아무쪼록 한국이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기를 염원하며 책은 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