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the End of the World | 데이터로 보는 기후 문제

기후 위기를 희망적인 각도로 바라보는 법
저자 한나 리치는 옥스퍼드 대학교 연구원이자 기후 변화, 에너지, 식량과 농업, 생물다양성 등 지속가능성 관련 주제를 연구해온 데이터 과학자다. 저자는 기후 문제를 바라보는 기존의 비관적인 담론에서 벗어나, '긴급하되 낙관적인' 태도를 제안한다. 이는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데이터에 기반하고 실천 가능한 해법이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한 낙관이다. 저자는 기후 위기와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한다. 단, 감정적이거나 이념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구체적 수치로 문제를 파악하자는 것이다. 기술적, 정책적 해결책이 이미 존재하고 있으므로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다만 시간이 여유롭지 않을 뿐이다. 과거 산성비 문제나 오존층 복구와 같은 사례를 들어 국제적 협력과 신속한 행동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 주며, 행동이 지연될수록 문제 해결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 경고한다.
잘못 알려진 환경 통념 바로잡기
저자는 그동안 대중들이 잘못된 정보에 현혹되어 왔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2100년에 기온이 6도 상승할 것이란 예측은 현재 상황과는 맞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예측은 석탄 사용량이 500% 증가한다는 비현실적인 가정에 기반했었다. 현재 재생에너지의 발전을 고려하면 실제로는 3도 정도 상승할 것이란 게 좀 더 타당한 전망이라는 거다. 물론 이 역시 심각한 일이고 신속한 행동이 필요하지만 말이다. 또한 아마존 열대우림이 지구 산소의 20%를 생산한다는 말도 부정확한 사실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는 6-9% 정도만 생산하며, 생산한 산소의 대부분을 자체적으로 소비해 순 산소 생산량은 거의 0에 가깝다. 이런 오류는 2019년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유명인사에 의해 퍼뜨려졌지만, 과학자들의 연구로 바로잡힌 것이라 한다. 아마존 열대우림은 아직 복원 가능한 상태이고, 산림 파괴 속도가 둔화되고 있다는 데이터를 제시한다.
저자가 잘못된 통념들을 바로잡고자 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실제 문제의 본질을 흐린다는 것. 아마존을 단순히 지구의 허파로만 인식한다면 생물다양성 보존이나 탄소 흡수 기능 같은 실제로 중요한 문제에 대한 논의를 비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과도한 절망감을 낳는다는 거다. 비관주의는 행동을 방해한다. '어차피 망했다'라는 파국론은 바로잡고자 하는 의지를 꺾어 버린다. 저자는 이런 오해들을 바로잡으면서도 문제의 심각성을 부정하진 않는다. 다만 문제를 과장하거나 왜곡하는 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는 관점이다. 실제 데이터를 보면 생각보다 많은 진전을 이뤘고, 앞으로 더 나아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희망의 근거들
저자의 말에 의하면 기후위기를 낙관적으로 볼 수 있는 근거들은 다양하다. 일단 재생에너지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태양광, 풍력, 전기차와 같은 청정 에너지의 비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이미 많은 지역에서 화석연료보다 경제적으로 유리한 선택지가 되고 있다고 한다. 영국의 경우 지난 50년간 탄소 배출량을 꾸준히 줄이면서도 경제 성장을 이뤄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또한 인간이 지구의 건강에 해롭다는 관점에서 봤을 때, 전 세계 인구 성장률이 이미 정점을 지나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도 긍정적이다. 생물다양성 측면에서도 일반적 인식과 달리 포유류와 조류 개체군의 거의 절반이 실제로 증가하고 있다. (전 세계 조류와 포유류가 전반적으로 감소 추세에 있지만) 보호 노력에 의해 개체수가 증가하고 있는 종들도 있다는 뜻이다. 산림 분야에서도 전 세계적으로 산림 파괴 속도가 둔화되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산림 복원이 이뤄지고 있다. 이는 탄소 흡수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후 행동에 대한 대중적 인식도 높아지고 있다. 많은 국가에서 기후 행동에 대한 대중들의 지지가 강화되고 있다. 다만 이런 낙관적 전망이 안일함을 불러와서는 안 된다. 실천적 낙관주의를 갖고, 기후 문제가 심각한 문제이면서도 해결 가능한 문제임을 인지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실천 가능한 해법을 찾는다면,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아쉬운 점은 있지만
이 책은 환경 오염, 기후 위기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지금까지의 기후 관련 담론들이 과도한 비관론이나 막연한 희망론에 갇혀 있는 경우도 많았다면, 이 책은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면서도 구체적인 해결 가능성을 보여 준다. 다만 비판도 있다. 어떤 리뷰에서는 저자가 성공 사례를 중심으로 서술하다 보니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책임 소재에 대한 논의도 부족하다. '탈정치적' 접근이 낳을 수 있는 공백에 대한 아쉬움의 목소리다. 재생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단기적 경제 충격을 과소평가했다는 시각도 있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은 저자가 선별한 성공 사례 중 디테일이 떨어진다고 느낀 부분이었다. 책에서는 중국의 대기질 개선 사례를 성공적 사례로 소개한다. 중국이 춘절을 맞아 대대적으로 공장을 가동했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미세먼지를 뒤집어 쓰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한번 체크해 보고 싶어지는 구간이었다. 베이징의 미세먼지가 크게 개선된 점, 중국인들의 미세먼지 관련 사망률이 하락한 점을 보면 중국내 미세먼지 피해가 줄어든 건 사실로 보인다. 하지만 중국은 새로운 석탄 발전소를 건설 중이며, 과잉생산 전략으로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며 막대한 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결국 자국내 대기질은 개선했지만, 지구 전체에 미치는 환경 영향은 여전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책의 의도는 대중의 지지와 행동을 촉구하는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을 참여하게 만들기 위해 부풀려진 비관론을 걷어 내자는 것임을 생각할 때, 일부 아쉬운 부분들은 부차적인 문제로 넘길 수 있을 듯하다. 책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합리적이다. 막연한 비관으로 무력해지지 말고, 데이터를 직시하자. 지구는 아직 회복할 여력이 있다. 다만 비관론에 기대어 행동을 미루면 문제가 더 어려워질 것은 자명하다. 가능성은 충분하고, 시간은 촉박하다. 가능성이 아직 빛나고 있는 동안에 바로잡자. "세상은 끝나지 않았다"